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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차고 기분 좋은 시작을 위하여

이토록 새해가 오기를 기다린 적도 없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새 마음, 새 기분으로 새로운 계획과 출발을 꿈꾸기 위해 차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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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해돋이를 보지 못하더라도 바다를 보고 파도 소리를 듣는 그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다

해 뜨는 동해, 7번 국도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는 국내 해변 드라이브 명소로 늘 가장 먼저 손에 꼽히는 곳.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즐기다 마음이 내키면 잠시 내려 공기도 쐬고 주변도 둘러보는 유유자적한 하루를 보내기에 최적이다. 여건만 된다면 일정을 넉넉히 잡아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 일주에 나서도 좋고, 하루 일정으로 일부 구간을 정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일상을 환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한 가지 팁은, 남쪽에서 출발해 북쪽에서 마무리하는 코스를 택할 것. 국도의 상행선 이 바다와 인접해 하행선보다 해변 드라이브에 더욱 적합하다. 이날은 정동진에서 시작해 낙산사를 최종 목적지로 두고 달렸다.
해 뜨는 동해를 곁에 두고 달리는 만큼 7번 국도에는 부산 태종대부터 포항 호미곶, 울산 간절곶, 추암 촛대바위, 강릉 정동진, 속초 영금정 등 잘 알려진 해돋이 명소가 여럿이다. 꼭 명소를 찾지 않더라도 동해와 맞닿은 지역 대부분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으므로 7번 국도를 달리며 나만의 해돋이 장소를 발견하는 일도 좋은 추억이 될 터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해돋이로 정평이 나 있는 정동진으로 향했다. 유명세가 워낙 대단해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도 이미 갔다 온 기분이 들어 괜스레 찾게 되지 않는 곳이었는데, 명소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경복궁이 있는 한양의 정동쪽에 있는 바닷가”라는 뜻의 정동진은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더 유명해졌다. 지금도 정동진역 안에 일명 ‘고현정 나무’라 불리는 소나무가 남아 있는데, 기차를 이용하지 않 고 나무만 보고 싶다면 역사 구내 입장권을 따로 구입하면 된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정동진역과 하얀 모래사장을 낀 해변이 전부였을 한적한 바닷가는 찾는 사람이 늘면서 자연스레 식당과 숙박 시설을 비롯해 시간과 시계를 테마로 꾸민 모래시계 공원이 조성되었다.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 많은 다른 관광지에 비해 협소한 모양새지만, 해돋이나 바다 풍경 하나에만 목적을 둔 사람에게는 충분하다.
찾은 날에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출발 전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며 일말의 희망을 품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별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끌어안고 해변가 산책에 나섰다. 운 좋게도 사람들이 거의 없어 너른 바닷가를 독차지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부드럽고 푹신한 모래 위를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중간의 바위 더미 외에 거칠 것 하나 없는 탁 트인 바다는 열심히 파도를 밀고 올라왔다 다시 밀려 내려갔다. 분주하고 바쁜 일상에 어지럽던 마음이 씻기며 일순간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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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후 이용할 수 있는 피그놀리아커피의 캠핑카 내부. 온열 장판과 히터가 있어 따듯하고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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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향호해변에 있는 방탄소년단 버스 정류장. 정류장 의자에 앉아 인생 사진에 도전해보는 것도 추억이 된다
(우)물마루 공방에서는 라탄을 비롯해 바다 유리로 만든 액세서리, 캔들 등 다양한 소품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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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향호해변에 있는 방탄소년단 버스 정류장. 정류장 의자에 앉아 인생 사진에 도전해보는 것도 추억이 된다
(하)물마루 공방에서는 라탄을 비롯해 바다 유리로 만든 액세서리, 캔들 등 다양한 소품을 판매한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정동진은 낭만과 함께 차디찬 바닷바람도 덩달아 안겨주었다. 추위로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달래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인근에 있는 피그놀리아커피를 찾았다. 커피 거리로 유명한 강릉에는 우리나라 1호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박이추커피’, 강릉 본점을 시작으로 전국에 지점을 둔 ‘테라로사’ 등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카페가 즐비하다. 수많은 카페 중 피그놀리아커피를 택한 이유는 단독으로 사용 가능한 캠핑카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는 예약을 통해 마당 한쪽에 놓인 캠핑카를 프라이빗 공간으로 제공하는데, 인원수에 상관없이 시간당 예약제로 운영해 혼자 또는 가족, 친구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뜨끈한 온열 장판과 히터, 무릎 담요까지 갖춰져 있어 한겨울에는 흔한 말마따나 ‘캠핑카 밖은 싫어’라고 외치게 될 만한 공간이다. 차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온기가 느껴지는 캠핑카 안에서 에스프레소에 쫀득한 크림을 올린 달콤 쌉쌀한 커피를 마시고 있으려니, 낙원이 멀지 않은 기분이다.
이른 아침의 구름은 온데간데없이 맑아진 하늘이 바다와 맞닿아 선명한 수평선을 그린다. 놓치기 아까운 풍경에 잠시 차를 세웠다. 주문진의 핫 플레이스에 들러 인생 샷 남기기에 도전할 작정이었다. 몇 년 새 강릉의 포토 스폿으로 새롭게 떠오른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인 영진해변과 방탄소년단이 앨범 재킷을 촬영했다는 향호해변 2가지 안을 놓고 고민하다 최근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온 방탄소 년단 버스 정류장으로 마음을 정했다. 막상 도착해보면 버스 정류장만 덩그러니 있어 정말 핫한 곳이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간헐적이되 꾸준하게 이어지는 사람들의 발길에 확신을 얻었다. 방탄소년단 버스 정류장은 목적 자체가 사진인 만큼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로 찍어 보는 편이 훨씬 근사하다. 빛바랜 멋이 있는 버스 정류장과 그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바다, 눈부시게 하얀 모래사장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낙산사로 향하기 전, 인구해변에 있는 양리단길에 들렀다. 새해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나를 위한 선물 하나를 골라볼 셈이었다. 양양의 첫 글자 ‘양’에 핫 플레이스마다 곧잘 붙이는 ‘~리단길’을 합성한 양리단길은 서핑 명소로 떠오른 양양에 전국의 서핑족이 하나둘 모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다. 건물마다 가게마다 서핑 보드가 있다는 점 외에 콘셉트도 모양새도 제각각이지만, 그 자유분방함이 나름의 매력이다. 길 안쪽 깊숙이 자리한 물마루 공방 역시 서핑이 좋아 양양에 터를 잡은 주인장 세 사람이 함께 마련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미미양양’, ‘리:오션’, ‘사비나 컬렉티브’ 3개 브랜드의 쇼룸 겸 원데이 클래스를 위한 공방으로 운영 중이다. 현재 쇼룸은 평일의 경우 사전에 방문을 요청한 사람에 한해 오픈하며, 라탄 공예, 바다 유리로 만드는 방향제와 캔들, 컬러링 아트 테라피를 체험할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는 인스타그램(@moolmaru_workshop) 예약을 통해 일대일 또는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한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인데도 발리 분위기 물씬 나는 드림캐처부터 라탄 소재 인테리어 소품과 가방, 바닷가에서 수집한 바다 유리와 조개껍데기 등을 재활용해 만든 방향제와 캔들, 액세서리 등 다양한 소품이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갖고 싶어 한참을 저울질하다 라탄으로 된 펜꽂이를 골랐다. 그동안 라탄 모양이 아닌 진짜 라탄으로 된 펜꽂이를 갖고 싶어 벼르던 차였다. 예쁜 펜꽂이에서 좋아하는 펜을 꺼내 들고 새해 계획이며 일기 등을 끄적일 상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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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련암 입구에는 뒷다리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두꺼비 조각상이 있다

우리의 새해 소원

짧은 하루의 끝맺음을 위해 마지막으로 낙산사를 찾았다. 낙산사는 671년 신라 시대 의상 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강화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국내 3대 해수관음 성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10여 년 전 높이 16m, 최대 너비 6m에 달하는 마치 세상을 압도하는 듯 거대한 해수관음상과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이후 근방에 들를 일만 생기면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찾던 마음속 힐링 장소였다. 이번에는 새해 소원을 간절히 빌 요량으로 찾아와서인지 다른 때와 달리 유독 기와며 꽃 화분, 양초 등 곳곳에 쓰인 사람들의 소원이 눈에 들어왔다. 부러 기와 등을 구입해 소원을 적었으니 ‘로또 대박’ 같은 엄청난 행운이나 기적을 바라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소원 대부분은 아주 평범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 그것이 전부였다. 그저 안온한 일상을 바랐을 뿐인데 어쩌다 그것이 그토록 힘든 일이 되었는지 싶어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부디 2021년 새해에는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아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기를 바라며, 해수관음상에서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따라 놓인 수많은 돌탑 곁에 조심스레 돌 하나를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