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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정리하는 몇 가지 방법

똑똑한 정리의 정희숙 대표는 “정리는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올 한 해를 잘 정리하고 싶다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켜켜이 쌓인 감정과 해묵은 이야기도 제대로 풀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해를 떠나 보내는 송년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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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음주 대신 크리스마스 소품 등을 만들며 보내는 이색 송년회가 늘고 있다

망년회에서 송년회로

지금은 송년회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망년회라는 단어를 더 자주 썼다. ‘한 해의 수고로움을 잊는다’고 하여 ‘잊을 망(忘)’자를 쓰는 망년회 문화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도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그믐날 밤에 온 가족이 집 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들지 않고 밤을 지새우며 새해를 맞는 세시 풍속은 있었지만, 사람들과 어우러져 술을 마시며 한 해를 잊는 문화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유래야 어찌 됐든 바람 잘 날 없는 근현대사 속에 한 해를 고이 보내주기는 어려우니 취하여 잊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잊기 위해 애쓰느라 연말 내내 고군분투했다. 가게마다 앉을 자리가 없었고 거리마다 들썩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러한 시끌벅적함이 연말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하루 걸러 하루씩 연달아 계속되는 연말 모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불현듯 맞이한 새해가 헛헛하다 느끼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어제가 된 작년과 오늘이 된 새해가 무엇 하나 정리된 것 없이 별반 다르지 않은 데서 오는 마음이었다. 일본식 한자어인 망년회가 아닌 ‘보낼 송(送)’자를 쓴 송년회라는 뜻에 걸맞게 한 해를 잘 정리해 보내주기로 한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함께 영화, 전시, 공연 등을 관람하고 감상을 나누는 문화 송년회, 볼링, 탁구, VR 게임 등 몸을 부딪치며 웃고 떠드는 레포츠 송년회,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크리스마스 니스 장식이나 케이크, 향초 등 연말에 어울리는 소품을 만들어 보는 체험형 송년회, 와인, 골프, 마음 챙김 등 관련 강사를 초빙해 취미 및 자기 계발을 도모하는 공부형 송년회, 술집 대신 맛집에서, 저녁 대신 점심을 함께하는 점심 송년회, 연탄 배달, 청소, 재능 기부, 자선 바자회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착한 송년회까지 각양각색의 송년회가 등장했다. 1차도 2차도 3차도 술이 전부였던 우리의 예전 송년회는 이제 재미도 있고, 나눔도 있고, 미래도 있는 모습으로 계속 새로워지는 중이다. 실제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서 고객 1,1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중 송년 계획을 묻는 질문에 1위는 ‘맛있는 식사’, 2위는 ‘음주’가 차지한 것은 이 같은 변화의 방증이라 봐도 무방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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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을 겨냥한 한정판 케이크는 인기가 높아 매년 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우)평범한 선물 교환도 작은 아이디어 하나면 흥미진진한 놀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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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을 겨냥한 한정판 케이크는 인기가 높아 매년 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하)평범한 선물 교환도 작은 아이디어 하나면 흥미진진한 놀이가 될 수 있다

연말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들

거리를 가득 메우던 술에 취한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겨울밤 거리를 화려하게 밝히던 일루미네이션은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축소되고 점등 시간도 짧아졌다. 여기에 연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캐럴이 저작권 문제로 듣기 힘들어지자 연말이 연말 같지 않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지만 그저 방법과 장소가 달라졌을 뿐 한 해를 잘 보내주려는 사람들의 송년은 오히려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소중한 몇몇 사람과 집이나 파티룸 등을 빌려 소규모로 즐기는 연말 파티가 크게 늘었다. SNS만 살펴봐도 가족, 연인, 친구들과 어울려 연말 파티를 했다는 이들을 금세 찾을 수 있는데, 데커레이션은 물론 각종 이벤트와 선물까지 알차게 준비한 모습이 여느 성대한 연말 파티 못지않다.
가볍게 포인트 컬러를 정하는 정도였던 드레스 코드는 파티 분위기를 돋움은 물론 멋진 인생 샷을 위한 필수 선택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파자마, 교복, 정장 등 카테고리를 정하기도 하고, 레트로, 로맨틱, 시크 등 하나의 무드를 콘셉트로 삼기도 하며, 리넨, 실크, 니트 등 소재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친구들과의 즐거운 하루를 위해 드레스 코드를 맞추는 일이 대중화되면서 ‘우정 시밀러 룩’, ‘친구 시밀러 룩’ 등을 키워드로 기획 단계부터 친구와 맞춰 입는 드레스 코드를 염두에 둔 세트 상품도 등장하는 추세다. 그다음으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은 연말 선물.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적정한 가격대를 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요즘은 여기에 재미와 웃음까지 고려하는 점이 다르다. 몇 년째 SNS에서 유행하는 ‘쓸데없는 선물 교환식’이 대표적인 예로, 단어 그대로 무용지물인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포인트다.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선물 추천 리스트’나 직접 이벤트를 경험한 사람의 후기를 보면,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난 2017년 달력부터 현대인이 전혀 신을 일 없는 짚신, 어린이용으로 나온 장난감 화장품 세트나 요술봉, 주차 금지 표지판 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다. 정말 쓸모가 없어 난감하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장난칠 생각에 혼자 킥킥거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선물 고르는 재미는 물론 어떤 쓸데없는 물건이 튀어나올지 예측 불가능한 흥미진진함이 더해져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다. 우리만의 개성을 담은 커스텀 케이크를 준비하는 것도 연말 파티 트렌드 중 하나다. 다른 음식은 반조리 식품이나 배달 음식으로 간단히 차려도 케이크만큼은 특별하게 준비한다. 이름이나 기발한 문구를 쓴 레터링 케이크를 비롯해 햄버거, 피자 모양 빈티지 케이크, 명품 브랜드 로고나 도라에몽, 펭수, 라이언 등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려 넣은 케이크 등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또 크리스마스나 연말 시즌이 되면 산타클로스, 눈사람 등을 소재로 한 한정판 케이크가 출시되는데,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구매 경쟁도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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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뷰티 살롱에서는 소중히 관리받는다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연말이 더 즐겁게 느껴진다
(우)아늑한 나만의 공간에서 차분하게 보내는 나 혼자 송년회도 한 해를 잘 정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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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뷰티 살롱에서는 소중히 관리받는다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연말이 더 즐겁게 느껴진다
(하)아늑한 나만의 공간에서 차분하게 보내는 나 혼자 송년회도 한 해를 잘 정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 혼자 송년회도 즐거워

그런가 하면 혼자 오붓하게 송년회를 즐기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과거에는 연말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대다수였으나 2010년대 이후 혼술, 혼밥, 혼행(혼자 여행) 등 혼자서 무언가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송년회까지 이어졌다.
혼자서 즐기는 송년회의 기본은 역시 집이다. 좋아하는 맥주나 와인에 치킨, 피자, 스테이크 등 원하는 메뉴를 준비하고, 이날을 위해 아껴둔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하거나 몇 번을 다시 봐도 감동적인 인생 영화 또는 조금 뻔하더라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나 홀로 집에>,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를 감상한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다리 쭉 뻗고 한두 시간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이 집에서 만끽하는 나 혼자 송년회의 매력’이라며 혼족은 입을 모은다. 스마트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동안 밀려났다가 최근 다시 돌아온 다이어리 꾸미기도 나 혼자 송년회의 빼놓을 수 없는 콘텐츠다. 스마트폰 캘린더와 메모가 편리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연말에는 자고로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고르고 설사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계획을 세우는 즐거움이 크다는 걸 다시금 상기하고 찾아가는 모양새다. ‘1300K 인기 다꾸템 특가전’, ‘텐바이텐 6공 다꾸의 모든 것’ 등 디자인 문구 편집숍마다 다이어리와 마스킹 테이프, 스티커 등을 엮은 다이어리 꾸미기 기획전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에도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새해 계획 세우기 등 연말 다이어리 꾸미기 콘텐츠가 즐비하다. 한편, 연말 기분 전환을 위해 뷰티 살롱이나 네일숍을 찾는 이들도 있다. 연말 모임을 위한 스타일링,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가 나는 네일 아트 등을 주요하게 내세우지만, 꼭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정성스러운 관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뷰티 살롱을 찾는 이유다.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했던 끝이 갈라진 머리카락, 손거스러미가 일어난 손톱 등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면 벌써 새해에 들어선 듯 산뜻한 기분이 든다.
가수 윤상은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페루 편’에서 “내가 즐거울 마음을 먹고 즐겁기 위해서 뭔가 행동을 해야만 즐거워지는구나”를 다시금 깨달았다는 소회를 남긴 적이 있다. 어쩌면 한 해를 잘 정리하는 일도 그와 같을지 모른다. 무엇을 버리고 남길지, 누구와 어떻게 얼마나 즐겁게 보낼지, 연말을 위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