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_썸네일-1

쇼핑의 세계

“한 장의 영수증에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 있다”(백영옥 작가의 소설 <아주 보통의 연애>)고 했다. 구구절절한 생활부터 대체로 소박하고 때때로 호기로운 삶의 자세까지, 소우주와 같은 우리네 모습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요즘 쇼핑에 대하여.

Description

진열된 수많은 물건들을 일일이 살피고 고르는 쇼핑은 삶을 더욱 즐겁게 하는 놀이와 같다

쇼핑하지 않는 현대인의 삶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먹는 것, 입는 것은 당연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탕진잼’을 외치며 단돈 1,000원짜리라도 무언가를 사거나 친구와 만나 노는 중에도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서도 금액이 크든 작든,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해도 물건을 고르고 살피는 쇼핑을 피할 수 없다. 모바일 리서치 오픈서베이에서 조사한 ‘모바일 쇼핑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답변자의 47%가 “딱히 할 일이 없거나 심심할 때” 쇼핑 앱을 이용한다고 하니, 쇼핑은 먹고살기 위한 필수 요소이자 삶에 재미를 더하는 놀이인 셈이다.

지난날 쇼핑의 회고

한때 어느 명품 브랜드 백에 ‘3초 백’이란 별명이 붙은 적이 있다. 워낙 크게 유행한 탓에 길을 걷다 보면 3초마다 그 백을 볼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었다. 그런가 하면 한창 인터넷을 떠돌던 한 사진은 30~40명쯤 되는 한 반의 아이들 대부분이 색깔만 조금씩 다를 뿐 특정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 점퍼를 똑같이 입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유행 아이템을 갖추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인식이 강해 쇼핑의 기준도 소비자이자 사용자인 ‘나’가 아닌 이를 바라보는 타인 혹은 시대의 시선에 맞춰져 있던 탓이었다. 어느 해인가는 가성비 열풍이 거셌다.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이었다.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물건을 찾는 모순은 설사 금세 망가지더라도 어차피 값이 얼마 하지 않으니 또 사는 것으로 해결했다. 명품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 때의 쇼핑은 사치와 동의어가 되어 마음이 불편했고, 가성비만 따지는 쇼핑은 그 끝이 금방이라 불안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쇼핑이 달라졌다. 쇼핑의 기준이 되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가 변화했고, 쇼핑의 과정을 좌지우지하는 결제 및 배송 시스템의 기술은 새로워졌다. 매년 그해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 전망하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2015>에서 ‘럭셔리의 끝, 평범(End of Luxury: Just Normal)’을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선정하며 “이제 진정으로 럭셔리한 아이템은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평범함 속의 여유’다”라고 진단했고, 2016년에는 ‘취향 공동체(Society of the Likeminded)’를 키워드로 꼽으며 “대세를 따르기보다는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쇼핑 트렌드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가 등장한다. 이제 쇼핑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 상품 기획부터 생산, 마케팅, 소비까지 관여하는 ‘컨슈머토피아(Consumer+Utopia)’를 구축한다. 2018년은‘욜로’가 더욱 확장해 삶에 있어서는 ‘소확행’과 ‘워라밸’, ‘케렌시아’를 추구하는 한편, 쇼핑에서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생각하는 ‘가심비’를 따지기에 이른다. 나아가 개인의 취향과 신념, 가치관을 세상에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을 시작한 사람들은 2019년 ‘필환경(Green Survival)’과 ‘나나랜드(As Being Myself)’를 규범 삼아 쇼핑에 나섰고, 2020년에는 마침내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을 넘어 생활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서비스 개념이 포함된 ‘편리미엄’을 사고팔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그 무엇도 아닌 소비자이자 사용자인 나를 중심에 두는 ‘미코노미(Me+Economy)’ 쇼핑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Description

쇼핑의 기준을 소비자이자 사용자인 ‘나’에게 둔 사람들은 이제 화장품도 성분을 따져 고른다

요즘 장바구니에 담긴 것들

‘미코노미’ 쇼핑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치다. 이것이 내게 필요한지, 내가 좋아하는지,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지, 삶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를 반영하는지 등 나를 중심에 둔 가치 여부가 쇼핑을 좌우한다. 절대적 가치를 부여받았던 명품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일명 백화점 화장품으로 분류하던 명품 브랜드의 화장품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지인에게 부탁해서라도 구입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브랜드 이름보다 그 안에 담긴 성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앞면에 새겨진 명품 로고 대신 뒷면의 성분 표시를 본다. 아무리 명품이라도 성분이 좋지 않으면 구입을 꺼리며, 반대로 좋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작은 브랜드라도 선뜻 구매에 나선다. 그렇다고 해서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명품을 사치품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역사 깊은 전통과 철학이 담긴 디자인을 이해하고 수많은 장인의 손을 거쳐 완성된 높은 품질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기회가 된다면 오래도록 곁에 두고 쓸 수 있는 명품 브랜드 제품을 위시 리스트에 올려둔다. 최근에는 해외여행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그간 모아둔 돈을 평소 갖고 싶던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나 신발을 구입하는 데 썼다는 이들도 심심찮다.
그렇게 아낄 때는 아끼더라도 쓸 때는 제대로 가치 있게 쓰고 싶은 사람들의 장바구니는 달라졌다. 필수 가전으로 여겨지는 TV도 내 삶에 꼭 필요한지 따져본 후 이를 대신할 고급 다이닝 테이블을 들이거나 구입을 결심했다면 단순히 가격만이 아닌 우리 집 인테리어, TV의 주 사용법 등을 고려해 고른다. 또 친환경에 관심이 있다면 포장은 최소화하고 비닐봉지 대신 종이 봉투, 다회용 백을 제공하는 온라인 몰을 골라 이용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동물이나 인권 문제에 도움을 주고자 설령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관련 굿즈를 구입하기도 한다.

Description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전자 상거래 플랫폼의 등장으로 이제는 해외 직구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편리한 쇼핑 생활

장바구니에 물건을 채우는 기준이 ‘나’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데 있다면, 온라인 쇼핑이 등장한 이래 날로 발전해온 배송 및 결제 시스템은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가치와 직결된다. 물건이 마음에 들어도 계속해서 결제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거나 쇼핑한 것조차 잊을 만큼 늦게 도착한다면 그다음으로 이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미리 결제하고 매장에서 바로 찾아가는 ‘바로 드림’, 전날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새벽 배송’, 그날 주문해 그날 받는 ‘당일 배송’ 등 몇 년 새 새롭게 등장한 배송 시스템은 온라인 쇼핑의 치명적 약점이던 긴 배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기다림에 대한 부담 없이 쇼핑을 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2010년대 중반, 자주 사용하는 카드만 등록해두면 공인 인증서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결제할 수 있는 간편 결제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더해지면서 더 편리한 쇼핑이 가능해졌다. 반면 2010년대 이후 쇼핑의 중요한 갈래로 자리 잡은 해외 직구는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품을 구입한다는 희소성, 같은 물건을 보다 저렴하게 산다는 가격적 장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를 위해서라면 최소 열흘에서 한 달 이상 되는 배송도 참는다는 사람이 많았다. 해마다 커지는 시장 규모에 해외 직구족을 사로잡고자 해외 직구의 불편함은 낮추고 편의성은 높인 전자 상거래 플랫폼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의 알리익스프레스도 대표적인 글로벌 마켓 플레이스 중 하나로, 한국 시장을 겨냥해 한국어 챗봇 기능을 도입하고 전용 물류 노선을 따로 두어 안전한 배송은 물론 배송 기간까지 단축함으로써 해외 직구도 국내 쇼핑처럼 편리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책 <쇼핑의 유혹>을 쓴 저널리스트 토머스 하인은 “쇼핑의 핵심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더욱 세련되게 만드는 일이다”라고 했다. 어떤 물건을 살지 결정하고,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이것저것 따져보고, 최종적으로 선택해 구입하는 쇼핑의 전 과정은 어쩌면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새로운 자아 찾기 방식인지 모른다.